1% 나눔으로 99%의 풍요로움을 만들다. 박원순 편
1% 나눔으로 99%의 풍요로움을 만들다. 박원순 편
  • YBS보도부
  • 승인 2005.03.20 20: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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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시 2004-11-02 22:10:42  
작성자 : 남현정


<<다운 받으시려면 다른 이름으로 대상 저장 해주세요^^>>


아름다운 재단은 안국역 2번 출구에서 나와 헌법 재판소를 지나 한참을 올라가서야 볼 수 있었다.
뉴스에서나 등장했던 헌법 재판소, 아름다운 재단 또한 그처럼 규격에 맞춰진, 내 머릿속에 그려진 그런 곳일거라 생각했다.
김영사 건물 맞은 편에 위치한 아름다운 재단은. 참 말 그대로 아름다웠다. 예쁘게 지어진 집 한 채.
재단이란 단어에서 풍겨지는 그 어떤 위엄과 권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앞에
편하게 앉아계신 박원순 변호사님 역시 그랬다.
  

남현정(이하 남): 박원순 변호사님께선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총선연대를 거쳐 지금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까지. 항상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시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이 이런 활동을 하시는 데
있어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박원순(이하 박):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 같진 않구요. 제가 대학 들어가서 박정희 정권 때의
긴급조치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됐어요. 특별히 제가 학생운동에 가담했던 것은 아닌데
학생들의 시위에 제가 동조했던 것 뿐이거든요. 그렇게 해서 제적되고, 약 4개월 정도 감옥에 가서
생활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그 때 기억이 참 소중했던 것 같아요. 저와 같은 나이의 동년배, 수인들..
정말 어떻게 보면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여러가질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기간 중에 읽었던 다양한 독서가 나중의 인생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저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이웃과 함께, 힘들게 사는 사람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야겠다란
생각을 하게 됐구요. 인생의 경로는 달라졌지만, 언제나 저 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생각들이 그 때 생겼던 것 같아요.

남: 아, 네..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릴께요. 올해로 참여연대는 10년을 맞이했는데요. 참여연대 하면,
변호사님을 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게 실제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참여연대 사무처장을 맡으셨잖아요.
변호사님께선 그동안의 참여연대의 역할과 참여연대가 가져온 우리사회의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박: 음.. 참여연대를 떠난 지 벌써 3년째가 되어가고 있는데요. 지금의 참여연대에 대해선 뭐라고
말하기 어려운데..(웃음) 초기부터 2002년까지 제가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립하는 그런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씀드리면 깨끗하고
맑은 정부, 또 우리 시민들이 참여해서 시민들이 그런 정부를 만들어가는 이런 걸 꿈꿔왔던 건데요.
저희들이 다양한 시민들의 여론을 형성하고, 정부의 여러 정책에 참여해서 우리 사회를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의 사회
로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부패방지법제정이라든지 국민기초생활법 보장이란
그런 운동이라든지 또 소액주주운동을 통한 재벌 견제라든지 낙선운동을 통한
정치인들의 책임의식을 확보하는 운동을 한다든지, 또 작은 권리 찾기 운동을 해서 국민들이
자기의 권리의식을 갖게 되고 그 권리를 찾도록 하는 그런 운동을 벌여 왔죠.
제가 사무처장으로 있던 그 해 15대 국회 4년동안 78개 법안을 청원해서 그 중의 반 정도가
통과됐거든요. 웬만한 정당의 노릇을 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당은 본래 민법 권한 기능을 행사하지만,
실제 별로 관심이 없었잖아요. 그래서 시민단체가 그 기능을 대행했던 그런 시도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시민단체가 돈이 있습니까, 사람이 있습니까. 아무런 권력이 없죠. 그렇지만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서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 낸. 힘들긴 했지만, 보람찬 시기였다는 생각을 해요.

남: 참여연대가 이끌어 낸 수많은 변화들, 긍정적인 역할을 해 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지만 일각에선 참여연대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 뭐 비판도 많았죠. 그러니까 시민단체가 권력화 됐다든지 관료화 됐다든지. 너무 정치적으로
변하지 않았느냐와 같은 여러 비판이 있었습니다
만 어느 운동, 어느 단체, 어느 활동도 좋은 측면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런 비판이 일리가 있고 그 비판을 수용해서 좀 더 나은 시민활동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정부나 재벌이 전용해 온 사회적 화두를
시민이 중심이 돼서 아젠다라고 할까요. 의제를 설정하고, 그 쪽으로 사회를 바꿔나가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새롭게 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남: 네. 여러 비판이 있겠지만 참여연대는 '권력 감시', '이슈 선점'을 통해 시민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변호사님께선 한국 시민운동의 한계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청사진의 모습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박: 시민운동이라는 것은 사실 정치개혁이라든지 그런 것에 그치지 않구요. 우리 시민들이 소망하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기존의 제도화 된 부분을 견제하고 때로는 정부나 기업과 파트너쉽을 만들어서
공동체의 꿈을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따라서 시민운동은 무정형의 운동입니다.
특별히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떤 기치를 내걸면 그게 바로 시민운동이 되는 거거든요. 여성운동, 환경분야 등
우리 생활의 다양한 분야들이 시민운동의 타겟이 되고 운동의 영역이 될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동안 정치권이 가장 부패하고 못했기 때문에 시민운동이 자연스럽게 정치 쪽으로 타겟을
맞췄거든요. 이 부분은 아직도 유효하겠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생활 속으로 대중의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좀 더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고,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이뤄지는 그런 운동이 벌어졌으면
합니다.
특히 이제 지방 분권 시대가 열렸잖아요. 지역 운동도 굉장히 중요해졌구요. 그래서
다양한 운동들이 온 세상에 퍼져가는 그런 시민운동이 됐으면 좋겠어요.

남: 박원순 변호사님께선 참여연대에 7년동안 계시다가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로 오셨는데요.
오랫동안 머물러 계셨던 참여연대를 떠나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시기까지 어떤 요인이 가장 크게 작용했나요? 순간의 결정이신지, 아니면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박: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의 시민사회가 다양해져야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참여연대는 보통 정부의
정책을 견제하고 감시하고 견인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데 그러다보니까 정치적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외국을 많이 다니면서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을 했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한 단체에 너무 오래 있으면 안되잖아요. 장기집권하면
안되거든요.(웃음) 그래서 참여연대에 7년 정도 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사무처장을 사임했는데
그러면서 제가 생각했던 게 생활 속으로, 보다 더 대중속으로 뛰어드는게 필요하지 않나.
그래서 아름다운 재단 일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 정부가 사회 복지 영역을 책임지고
있지만 그건 정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한거잖아요. 그래서 민간의 힘으로 기부 문화를 만들어서
이웃을 돕는 그런 운동이 선진국에선 굉장히 활발하거든요. 우리나라는 돈이 많은 사람이 재단을
만들어서 그런 일을 하긴 했습니다만 그게 소극적이고 지지부진했죠. 그런데 이제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어서 시민들에게 한 푼, 두 푼 1% 운동을 해서 이제 한 4년 됐습니다만 그래도 나눔 문화가
우리 사회에 확산되는 데 어느정도 기여를 했죠. (웃음)

남: 변호사님께 따라오는 수식어가 참 여러가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게 '개혁의 대표주자, 박원순' 이런 수식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님은 '그래요?'라고 말씀하시면서
특유의 눈웃음을 지어보이셨다.) 항상 개혁을 추구하시는 변호사님께선 현재 참여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개혁 정책들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시는지 궁금하거든요.

박: 저는 개혁이라는 것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물은 고이면
썩잖아요. 그래서 물은 언제나 흘러야 되고.. 또 시대가 바뀌고 시대에 뒤따르는 환경이 바뀌면
언제나 그 사회는 새로운 개혁을 이룩하지 않으면 결국 정체되거나 패망하게 된다는 것을 우리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더군다나 우리는 과거 식민지 시대, 군사 독재 정권,
또 이런 근대화를 거치면서 선진국, 선진사회, 서구문명을 따라 잡을려면 결국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갈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런 과정에서 개혁이라는 게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저는
개혁이라는 화두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단 개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 사회를
통찰하고, 어떤 사회로 어떤 시대로 가야된다는 비전
이랄까.. 그런 것이 정확히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또 그것을 이룩하는 과정이, 일종의 로드맵이라고 하잖아요. 그것이 확실히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대통령 개인이나 정부의 일방적인 힘만으로는 마련되지 않거든요.
옛날에 김영삼 정부를 원맨쇼라고 얘기하잖아요. 김대중 정부도 그렇고. 지금의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개혁의 비전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들 사이에 공유되고 함께 이해되지 못하는 상황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끌어가다 보니까 한계가 발생하고,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반대와 저항에 부딪히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개혁이 지지부진해지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가에 대해서 좀 더 폭넓은 다양한 소통과
이해와 공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 어떻게 가야하는지에 대한 방식이 결정되고
국민들과 정부가 함께 개혁을 위한 노력이 이뤄져야 하는거죠. 그 부분에 있어서 이제까지 정부들이
충분한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남: 네. 변호사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는 아름다운 재단이 어떤 곳인지 궁금해지는데요. 아름다운 재단은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해나가고 있나요?

박: 아름다운 재단이 사실 모금을 목적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저희들 자신이 모금을 많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확산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지금 촬영하고
계시는 이곳도 기부문화 도서관입니다. 그래서 여러나라의 중요한 재단들의 애뉴얼 리포트를
비롯해서 여러가지 자료들, 책들이 모여져 있거든요. 이런 도서관이 있음으로써 기부문화를
공부하고 이해하고자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이 되구요. 그 다음에 저희에겐 기부 문화 연구소라는 게
만들어져 있구요. 또 1년에 한번씩 애뉴얼 인덱스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기부 문화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현재 어떤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여러 기관에서 조사해서 매년
측정하는 이런 것도 하고 있구요. 그 다음에 가장 중요한 것은 1% 나눔운동입니다. 실제 우리
국민들에게 10%를 내놓아라, 유산을 전부 다 내놓아라 이런 요구를 하면 너무 과격한 거잖아요.
하지만 1%는 할 수 있잖아요. 1%가 생활화되면 또 그게 적은 돈이 아니거든요. 현재 저희가 1%
운동을 벌여서 40억 정도를 모았습니다.
그 정도면 많이 모은거죠. 또 여러분들이 많이 아시는
아름다운 가게 운동이라는 것이 있어요. 헌 물건을 기부받아서 수선하고 싸게 판매해서 남는 수익을
자선에 쓰는 이런 운동을 하고 있는데.. 지금 전국에 가게가 30개 정도 만들어졌거든요. 하지만
이런 문화는 서양에 보면 굉장히 발전해 있는데 우리도 늦게였지만, 국민들이 굉장히 감성적이고
자비심이 많거든요. 아름다운 재단이 매년 성장하고 있는 속도를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남: 방금 말씀하셨지만, 아름다운 가게가 지난 2년동안 전국에 30개 점포가 생겼다는 것은 굉장히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는 말과 바꿀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와 같은 아름다운 가게 성장 속도의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박: 글쎄요.. 과거에는 우리가 성장 위주의 시대에 살아왔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뭔가 고급적이고, 흔히
메이커라고 하는 고품격의, 새 것을 지향했던 사회에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
좋고, 비싸고, 새것을 입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격과 인생이 풍요로워지는가, 그것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생겨났다고 봐요.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좀 더 성숙하고 발전할 수록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시대의 성찰이 이뤄질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름다운 가게 운동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운동이지만 어떻게 보면 철학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렇게 보거든요. 그래서 과거에는
국민들이 헌 물건을 안 쓴다. 이런 인식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아름다운 가게 운동이 시작되면서
국민들의 그런 생각을 바꾸는데 굉장히 기여를 했던 것 같습니다. 많은 언론과 기업,
그리고 행정기관이 함께 하면서 이게 하나의 큰 파도처럼 우리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 일조했던
것 같구요. 하지만 이제 뭐 시작입니다. 다른 나라, 예컨데 영국의 옥스팜 같은 경우는 약 800여개가
되구요. 미국의 굿윌 같은 단체는 미국에만 한 3000개 정도의 점포가 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아직 30개밖에 안됐으니까. 전국에 몇 백개는 되어야죠. 시, 구, 군 마다 하나씩 만들어져야죠.

남: 아직은 부족하다란 말씀이시네요.(변호사님께선 역시나 고개를 끄덕이신다.) 우리 사회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이 극도로 구분돼 있잖아요, 그런데 아름다운 재단의 활동은 빈곤한 사람들에게
작은 풍요로움을 제공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님께선 이렇게 극도로 심화된
빈부격차의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시는지요.

박: 흔히 우리 사회를 20:80의 사회다.. 라고 얘기하잖아요? 20이 80을 소유하고 있고, 80이 20밖에
소유하지 못하는 그런 사회라고 얘기하는데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 국가의 정책이나 조세 정책
그런 문제도 있고 또 사회 복지나 그런 것들이 잘돼있지 않은 이런 측면이기도 하거든요.
우리나라 사회 복지 분야에 대한 정부의 투자가 외국에 비한다면 빈약한 게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서
소득 보장이나 주택이라든지, 장애인이나 노령층, 절대 빈곤층에 대한 배려들이 참 부족하거든요.
우리나라에 밥을 굶는,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수십만명이 된다고 하니까..
또한 단전, 단수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세대가 수십만 세대구요, 그러니까 혹한, 혹설기에
전기가 끊기고 물이 끊긴다고 생각해보세요. 그것보다 더 잔인한 인간적 환경이 없거든요. 아직도
우리 사회가 이런 경우가 많은데 우선 정부가 나서야 돼구요. 우리가 복지국가로서의 면모를
좀 더 강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용되는 예산을 보면 썩어나는 곳이 많구요. 잘못
사용되거나. 또 우리 사회의 부패도 큰 문제구요. 그래서 이런 부분을 바꾸면 우리 사회의 빈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 정부만이 이걸 다 할 순 없습니다. 민간 영역이 함께
파트너쉽을 이뤄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해요.
그 점에 있어서 아름다운 재단이 작년 한 해
100억을 모아서 배분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재단들이 많이 생겨나서 지역마다
이런 공익재단들이 생겨나고 많은 기업이나 시민들이 함께 참여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면
빈부격찬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남: 방금 무엇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현재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이 지나치게 분배 위주의 정책이다, 좌파 정책이다라면서 야당을 비롯한 여러 보수
언론들이 노무현 정부에게 딴지를 거는 그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 제가 보기엔..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날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과거 박정희 정부 때 성장 일변도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분배와 관련된 정책이 소홀해지고 사회 갈등이나 사회 부정의가 많이 축적됐거든요.
그것이 결국은 오늘의 성장을 잠식하거나 견제하는 요소가 됐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시 말씀드리면
저는 분배라는 것이 성장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음, 파이를 많이 키워야 나눌 게
있지 않느냐 라는 사고는 일방적 사고 방식
이라고 여깁니다. 우리가 과거처럼 성장만 하거나 분배만
하거나 이럴 수는 없잖아요. 모두 균형되게 발전하는 이른바 균형성장이 가장 중요한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구요. 그것이 또 성장을 확고하게 가능케 하는 그런 요소인 것 같거든요.
빈부격차를 완전히 근절할 수는 없어요. 심지어 사회주의에서조차 빈부격차를 근절하지 못했잖아요.
완전히 평등하게 만들수는 없겠지만 다만 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에선 자연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처지는 사람들이 생겨나잖아요.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다시 노력해서 부자가 되기도 하고,
또 그런 상황이 될 수 없는 절대 빈곤층의 사람들은 국가정책으로 구제를 해야 되구요.
그것이 이른바 복지국가의 기본적인 발상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사회 정의나 국가 균형 발전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되거든요. 빈부격차가 근원적으로 생겨나지 않도록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 한다고 보는데 그것이 바로 세금정책이라든지 경제 정책이라든지, 어떤 고용이
평등하게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다음 세제를 통해서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세금이
뚜렷하게 구분될 수 있는 있어야 하는데. 지금 그런 정책이 올바른 방향으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봐요.

재벌은 정경 유착을 통해 돈을 점점 더 크게 벌고 가난한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는
그런 절대절명의 상황으로 몰고 온 게 참 많거든요.  이것을 수정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이런 것이 사회 정의에 맞는 정책인데 이런 것을 좌파 정책이라고 몰아 붙이면 안돼죠.

남: 네, 잘 알겠습니다. 변호사님은 너무 바쁘게 뛰어오신 걸로 아는데..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진 않으세요?

박: 네. 그럼요. 제가 1년에 2~3개월 동안은 거의 외국에 여행을 하거나 회의 참여를 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자연히 재충전의 기회가 되구요. 언제나 사람은 자기 소모만 하면 안되잖아요. 또 많이 배우고,
얻고 그렇게 해야 하는데. 저는 특별히 다른 것 보다 다양한 뉴스, 책, 그리고 사람들과 접하면서
제 자신 스스로 배우고 연구하는 그런자가충전의 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 부럽네요.(웃음) 그러면 변호사님께선 이제까지 여러 활동을 해오시면서 특별히 아쉬웠던 순간이나
후회되는 일 같은 건 없으신지.

박: 아쉬웠던 적 많죠.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와 같은 아쉬움, 회한. 이런 것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데
그 상황에서 언제나 최선을 다하다 보면 뭐 그 이상 어떻게 합니까, 인간인데..  완전하고 완벽함이란 건
있을 수 없잖아요. 다만 그 시기에 처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뭐.. 그러면 되겠죠? (웃음)

남: 마지막으로 질문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셨던 것과 연관지어 생각해보면 아름다운 재단에서
그렇게 오래 계실 것 같지 않은데요.

박: 그것을 미리 결정할 수는 없는 일인데요. 다만 그 전에 미리 계획했던 일들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제가 없어도 돌아가는 구조가 된다면 굳이 제가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뭔가 제가 꼭
필요로 하는 곳에 제가 가서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고 어떤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기꺼이 옮겨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되는 곳에 제가 가서 있을 필요는 없다. 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곳에, 제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에 그렇게 가고 싶어요.

남: 그렇다면 관심이 있으신 영역, 다음 곳은 어디다.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시진 않으셨나요?

박: 지금 제게 주어진 활동을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그 다음 길이라든가 해야 될 역할이 예비되더라구요.
그것을 믿고. 제 일에 충실하다보면 그 다음의 제 역할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ybs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5-03-24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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