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서울대, 제중원 두고 뿌리 논쟁 길어지나
연세대-서울대, 제중원 두고 뿌리 논쟁 길어지나
  • 김한비 기자
  • 승인 2015.03.03 2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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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대학교 연세 역사의 뜰에 재현돼 있는 광혜원.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 의료기관으로, 1885년 미국인 선교의사 호레이스 알렌의 건의를 받아 고종의 승인 하에 설립됐고 이후 제중원으로 개명됐습니다.

 이 제중원의 전통 계승 문제를 두고 세브란스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앞다투어 제중원 설립 130주년 기념 달력을 회원들에게 배포했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총동창회와 우리대학교 의과대학 총동창회.

 두 대학병원의 뿌리 논쟁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1978년 펴낸 『의과대학사』에서 처음 시작됐고, 그 이후 서울대병원은 2007년, 세브란스병원은 2010년에 개별적으로 제중원 설립 기념식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

 제중원을 누가, 어떤 이유로 설립했는지에 대해 두 대학병원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서울대학교 의학박물관은 웹사이트에서 고종과 조선 정부가 서양의학을 능동적으로 들여온 덕분에 제중원이 탄생했고 제중원과 서울대병원은 같은 국립병원이란 점을 강조합니다.

 [서울대학교 의학역사문화원 관계자 인터뷰: 제중원이란 병원은 우리나라에 있는 서양의학을 따르는 모든 병원의 조상인 거죠. 엄연하게 국립병원이고, 고종과 나라에서 백성들을 위해서 만든 병원이에요. ]

 이에 반해 우리대학교 박형우 동은의학박물관장은 책『제중원』에서 조선 정부는 제중원의 설치 비용만을 부담했을 뿐이며, 제중원은 알렌과 미국 선교부가 계획하고 운영하던 병원이었다고 반박합니다.

 1894년 제중원은 계속된 재정 악화와 부정부패로 운영이 어려워졌고, 이 시점에 미국 선교부에 넘겨졌다 우리 정부가 돌려받았던 권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두 병원의 해석은 다릅니다.

 세브란스병원에선 선교본부가 새 건물로 이전하면서 예전 제중원의 부지와 건물만을 조선 정부에 돌려줬으며, 제중원에서 이뤄졌던 실질적인 치료는 이후 세브란스병원에서 이어졌다고 주장합니다.

 [우리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여인석 교수 인터뷰: 세브란스병원을 지으면서 조선 정부에서 받은 제중원 건물에서 활동하던 의사나 의료 시설 이런 것들을 다 옮겨 왔기 때문에, 껍데기만 남은 거죠. 그걸 계속 제중원이라고 얘기하기는 어렵고...]

 반면 서울대병원에선 제중원의 건물, 부지, 운영권을 따로 분리해 생각할 순 없다며 당시 제중원의 모든 것은 조선 정부에 반환됐다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대학교는 올해 연세 역사의 뜰에 한옥 2채를 추가로 세워 제중원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재현할 계획이고, 서울대병원은 오는 4월 병원의 역사를 주제로 화보집을 발간하고 사진 전시회도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뿌리 논쟁이 가열되는 가운데 두 대학병원은 각자의 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YBS NEWS, 김한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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